3文(もん)コラム by BON局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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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사냥과 바벨탑

"신의 영역에 도전한다"

최근 과학기술이 급격하게 발전하면서 부쩍 더 자주 들리는 말입니다,
어쩌면 아주 오랜 동안 인간에게 있어 신(神)은 미지의 존재이면서 극복해야 할 존재였었는지 모르겠습니다.

미지(未知)...
'알 수 없음'(보이지 않는 만져지지 않는...불확실성)은 공포의 전제이며,  
알 지 못 하는데 내게 분명히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존재는 경외(敬畏)의 대상입니다.
'경외'는 사실상 '공포'(알지 못 함 에서 온)를 기반으로 하고 있습니다.

현생 인류는 이 공포에 '민감'했던 조상들의 후예입니다.
용감한 자들에 비해 겁쟁이들이 생존에는 더 유리했던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런데 이 겁쟁이들이 만용(蠻勇)을 부리는 때가 있습니다.
인간을 향해서 그리고 신을 향해 만용을 부리는 때.

공포는 '불확실성'에서 나옵니다.
이 공포, 불확실성을 해소하기 위해 겁쟁이들은 어떻게든 불확실성을 제거하고자 합니다.

인간을 향한 만용의 대표적인 것이 '마녀사냥'입니다.
이 불확실한 상황(공포)이 마녀에 의한 것이라고 단정(불확실성을 제거 했다고 스스로 착각)을 하고 용기를 내어 사냥을 시작합니다.
이 때 조심스럽고 신중하던 겁쟁이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비이성적인 광인(狂人)의 모습을 드러냅니다.
참으로 비과학적이고 어리석기 짝이 없는 행위입니다.
이는 충분히 합리적인 세상이 되었다고 믿고 있는 현대에도 형식만 달라졌을 뿐 여전히 자행되고 있는 어리석음입니다.

다음으로 신을 향한 만용의 대표적인 경우는 무신론 즉, 자기가 알 수 없다고 신을 아예 없는 존재로 무시하는 것입니다.
이럴 때 비로소 '바벨탑 쌓기'는 시작되는 것입니다.

이 '어리석음'에 대한 심판은 '언어를 혼란스럽게' 함으로 나타납니다.

인간 세상에서는 온갖 말과 말들이 혼란스럽게 터져 나오면서 우왕좌왕하게 되고,
이 언어 혼란은 급기야 상호간 극심한 갈등으로 확대 되고,이 갈등 속에서 자신의 속내, 치부까지 온 천하에 다 드러남으로써 부끄러움을 당하게 됩니다.

신을 향한 언어 혼란은 신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 해 신과 다른 길을 가고,
심지어 신의 뜻에 정면으로 대치 되는 행위까지 하면서 패망의 길을 가게 되기도 합니다.

'마녀사냥'도 '바벨탑 쌓기'도 사실 한 뿌리,
바로 '알지 못 함'에서 기인한 것입니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제대로 '앎', 바로 '진리'입니다.
'진리'야 말로 혼란을 극복하고 부끄러움을 당치 않게 하며 패망에서 벗어 나게 하는 유일한 길이 됩니다.

정명석 목사께서는 선교회 설립 당시 부터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분명하게 알 수 있다',
그리고 하나님에 대해 정확하게 알게 되면 그는 더 이상 미지의 존재 경외의 대상, 두려움을 주는 존재가 아니시고
서로 사랑하며 살 수 있는 신랑, 신부의 입장으로 전환 될 수 있음을 밝히셨습니다.

'무지'가 '죄'임을 불을 보듯 뻔히 볼 수 있는 이 때
혼란스런 '말'이 아닌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땅'이 아니라 눈을 들어 '하늘'을 봐야 하는 적기가 아닐까 생각 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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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20/03/07